현실의 건설?

	한 경 훈 (지승미디어 대표) 10여년전인가 "개념정립을 위하여"라는 제 하의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지금은 그 내용을 잘 기억나지 않지만 또한 언급하기도 껄끄러운 글로 기억되는데, 이 글을 읽고 선명성이나 행동의 정향성(벡터=vector)을 자극 받았다기보다는 무엇 인가 막연함과 자의성, 그리고 답답함을 느꼈던 것 같다. 20세기는 주지하다시피 원자와 뇌, 그리고 컴퓨터의 세기임과 동시에 "언어의 세기"이기도 하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성립되어 왔던 어휘보다 20세기에 들어서 더 많은 단어가 성립되었다. 특히 과학 기술적인 술어는 가히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헤아리기가 힘들다. 그중 현재 無所不爲의 힘을 과시하는 정보화 사회의 그 첨병적인 디지털 용어로는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 인터넷, 가상의(virtual)라는 수식어가 붙는 용어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은 그 물리적인 실체이고 이를 매개 체로 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가상의 공동체 즉, 사이버스페이스라고 볼 수 있는데 사실 엄밀히 그 뜻에 대한 정의는 유아적인 단계인 것이라 하겠다. 사전을 들춰 바도 그 생성에 난기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가상 세계 구현을 위한 현존하는 정보 기술의 관계에 대해선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지도 않다. 달리 말하면 이 가상 현실은 그 스스로 가상의 언어, 언어상 명칭에 대한 신비화, 多音節의 머릿 글자, 후기 구조주의적 은어, 대중 문화, 정보이론 및 정보오락(infotainment)으로 생성된 기 이하 변종을 창출하고 있는 것 같다. 이 cyber라는 접두어는 일등항해사(steersman, 키잡이)의 뜻을 갖는 kyber라는 그리스어에서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이 말을 시스템 내의 통신과 제어, 그리고 그러한 환경 내에서 어떻게 지능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운행되는가에 대한 과학인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의 저자인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가 사용했으며 공 상 과학 소설에서는 윌리암 깁슨의 Neuromancer에서 이 말을 사용했다. 깁슨이 뜻하는 사이버스페이스는 사용자가 항해해야 할 컴퓨터 데이터의 무차원의 세계를 뜻하는 것이었으나 요즘 들어서는 이 접두어는 기술적으로 무엇인가 스마트하고, 근사하며, 최신 과학 기술에 대해서 정통하다는 합의를 얻은 듯하다. 여기서 디지털 언어에 대한 정의를 하려 함은 아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적, 지 적, 사회적, 정치적인 성장을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는 정보 사회를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계하는 도상에서 처해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분명 정치적 특성인 자의성에 의거해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분명할 것이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보면 농업혁명, 상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하는 식으로 그리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사회주의), 중심부와 주변부, 인문과학과 자연과학, 현실과 가상, 아날로그와 디지털 따위로 구획화하거나 단절에 익숙해 있을 뿐아니라 이러한 표면적인 말들로 이루어진 각각의 영역을 우리는 또한 문화라는 이름으로 지칭하고 있기도 하며 이러한 경계 지워진 영역에 안주하려는 습성을 지니 게 되어 역사의 총체성을 애써 외면하여 개체적인 포만과 안일에 자만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정보 문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게 될 문화에 지나친 기대감으로 우리들이 관 계라는 현실에 처해 살아가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언제 부터 인가 우리의 삶에서 무엇인가를 자의적으로 구분하려는 행태가 보편화되었다. 총체적인 인식 및 존재에 기반한 것이 아닌 권력(정치 권력만이 아닌)과 부 그리고 이를 최전선에서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의 恣意性에 근거한 경계 설정으로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한 장밋빛 희망만을 부각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한 것은 정보의 공정한 이용과 남용의 방지에 대한 총의를 도출하지 못하면 현실에 기 반한 인식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보화의 물결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정보 사 회에서 풍요한 삶을 향유할 수 있다라는 약속을 이행치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보 사회의 도구인 인터넷을 말할 때는 무언인가 절대 신을 숭배하거나 연인을 사모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여 온 듯하다. 미디어로써의 인터넷은 현재 첨단 과학의 결정체 중 하나이자 사회 및 개인의 생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정보 기술로 정부의 효율성, 기업의 생산성, 각 개인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다. 우리는 여러 미디어(신문, 방송, 출판물따위. 물론 인터넷도 미디어의 하나이다.)를 통해서 들리고 보여지는 것들은 장밋빛 미래만을 부각시킨다. 전자정치, 교육, 비지니스, 시민운동의 활성화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그 진위를 차치하고라도 진보의 시대를 건설하여 왔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경제사적으로도 수렵, 채취의 시대를 시작으로 아직도 그 구 조 및 제도가 형성되어가고 있지만 지식 정보 시대에 이미 접어들었다. 지난날의 변혁기에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즉, 발전과 진 보는 그 토대가 과거에 기반하여 민중적인 총의 및 제반 하부구조가 건설되어 가면서 진보라는 맛을 느꼈던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향후 전개될 지적 세계 즉, 정보 사회는 기존의 어떤 사회를 초월하는 전혀 다른 사회/현실이 될 것이라고 우리들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같다. 이는 자기 반영성, 동시성, 병치 혹은 몽타주, 패러독스, 모호성, 불확실 성, 비인간화, 동합된 개별 주체 또는 개성의 붕괴, 더욱 심각한 것은 원본도 사 실성도 없는 실제를 만들어 이를 모델로 현실을 창출하려는 작금의 사상적 조류인 포스트 모더니즘과 주체와 역사를 무시하는 후기 구조주의와는 무관한 것같지 는 않다. 아니 이러한 것들이 현재 우리들이 지닌 특성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문화 시대에 살고 있다. 다문화란 표면적 문화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는 자의적 분할을 실체화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문화란 자의적 필연,상대적 절대 가치의 세계이다. 자의적 필연이란 자연적이고 본능적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표면의식에 필연적, 절대적인 것으로 반영하는 양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의 절 대화로 말미암은 차별, 단절은 우리가 반만년동안 발전 시켜온 우리의 문화를 말살하려던 일제의 작태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우리는 좀더 심층적 정신의 세계에 서 이 표면문화를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민족은 자신의 의식과 인식을 타인에게 알릴 수 있는 "말"에 진지한 민족이라 여겼다. 표면적 문화를 수용하면서 그 기저의 심층문화를 발전시켜 왔던 민 족이라 여겼고 그런 국민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움직임은 그 절박성이라는 부분을 충분히 수용한다 하더라도 좀 경박한 행태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음은 웬일일까. 지식 정보 사회를 건설해 가는 이 즈음에 과학 기술적인면 뿐만 아니라 사회 문 화적인 면에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산적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공적인 장밋빛 미래를 원한다면 단순히 과학기술적인 측면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삶의 본질인 관계라는 측면에서 다가올 문화를 건설보지 않으시렵니까. 결국 어떤 형 태의 사회 문화라도 인간과 생명이 살아가야 할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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